초기불교와 간화선


초기불교란,

초기불교는 없습니다. 초기불교라는 언어를 선점했을 뿐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는 지구상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분별상좌부(테라와다)라는 부파불교의 아비담마 철학불교만 있습니다.


*아비담마(Abhidhamma) 철학 불교 : 부처님이 설법한 경전에 대하여 부파불교 시대에 자파의 교리학설을 정당성과 우위성을 두기위하여 체계화 시킨 주석서를 중심으로 논서불교ㆍ철학불교를 말합니다.


초기불교의 정석은 고대경전(초기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선정 없이는 깨달을수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완벽한 지혜의 깨달음은 선정(jhāna)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앙굿따라 니까야

(AN Ⅹ,1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 없이 깨달을 수 있다고 하면 초기불교가 아닙니다. 초기경전과는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심장은 왼쪽에 있지만 오른쪽을 가리키는, 각 부파의 종파적 주장이 가미되어 부처님의 활활발발한 살아있는 생명력을 빛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수행의 깨달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말로는 얼마든지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은 존중하나 정법에 대한 안목과 지혜 없는 신념은 실제가 아니고 확증편향입니다. 존중하되 믿지 않을 때 자기 혁신의 길이 열립니다.


신념을 진리라고 한다면 지금의 미국 조찬모임에서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이제는 '릴리젼'(religion · 신과 인간의 매개체)이라고 하지 않고 ‘페이쓰'(faith · 신념, 신조, 믿음)’라고 한다는 것과 어떤 다름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마음이 안든다고 진리가 아닙니다. 초연의 길, 대자유의 길에 들어서서 왜 스스로 틀에 갖혀야 하나요? 부디 한 전통에만 매달리지 마십시오.


과연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이 우리에게 얼마나 실제적 삶의 변화를 줬으며 생사 번뇌로부터의 자유를 이끌었습니까?


깨달음은 신의 개념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고대 원형경전(초기경전)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아쉽게도 남방 초기불교의 어느 전통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부파불교의 논서인 아비담마에 입각한 담론적 수행법이었습니다


명상과 참선


불교명상은 참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팔정도의 선정(禪·쟈나)과 곧바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조사선과 간화선의 선불교의 수행을 말합니다. 


초기불교 명상ㆍ안반선


안반선이란 부처님께서 완전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룬 성불수행으로서 선정을 통해 해탈ㆍ열반을 성취한 호흡명상의 참선으로, 2,600년 역사의 부처님의 본래 정통 초기불교 명상을 말합니다.


*안반선은(安般禪)은 아나빠나사띠의 음역이며 뜻은 들숨과 날숨의 마음집중 참선이다.


안반선은 부처님께서 인도 역사상 최초로 선정(쟈나ㆍjhāna, 禪)을 발견하여 성불한 붓다의 명상으로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이루는 참선법입니다.(SN2,7;AN Ⅸ,42)


*고대경전의 문헌에는 "네 가지의 사선정(四禪定)은 부처님이 출현할 때만 나타난다"(SN 45,14-17)



안반선 16관법

안반선은 사마타(평온ㆍ삼매)와 위빠사나(통찰ㆍ지혜)를 닦는 참선(명상) 입니다. 점차적으로 사마타를 명상하다가 선정을 얻은 후 깨달음을 증독하는 위빠사나로 전환될 때 닦는 명상이 아누빠사나(anupassanā 수관隨觀)라 합니다.


*아누빠사나: anupassana는 anu+passana이다. 'anu'는 점점더, 반복하여 세밀하게... 의미이고, 'passana'는 여실지견의 '봄'으로써, "~~를 점점 더 반복하여 고찰(숙고, 반조)한다"라는 뜻이다.


사념처는 두종류가 있습니다. 안반선 16관법의 사념처와 대념처경의 6종류 명상법6종류의 사념처입니다. 


사념처란 신수관(몸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명상) , 수수관(느낌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명상), 심수관(마음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명상), 법수관(법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명상)의 참선수행법입니다. 


대념처경(大念處經)의 사념처 명상은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37도법(37보리분법)의 수행법이 잘 전승되어 있습니다.


대념처경의 사념처 선밥(명상)은 몸을 기반으로 하는 명상은 안반선ㆍ사위의관ㆍ일상관ㆍ32상 부정관ㆍ4대명상ㆍ공동묘지관(4종류 10가지)의 6종류 명상과 느낌에 대한 좋다ㆍ싫다 ㆍ좋지도 싫지도 않음을 사띠(마음알아차림)하는 3가지 명상, 마음을 기반으로 하는 8가지 명상, 법(오개, 오온, 12처, 칠각지, 사성제)를 기반으로 하는 명상을 말합니다.


안반선(아나빠나 사띠)의 사념처는 신ㆍ수ㆍ심ㆍ법념처에 대한 16관법의 사마타-위빠사나 마음명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선정과 통찰의 점차적 정혜수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반선경은 깨달음에 이르는 체험의 단계를 설명한 고대경전(초기경전)으로 아나빠나사띠라는 호흡관의 체계를 16관선으로 잘 말씀되어 있습니다.


즉, 신수관(身隨觀 kāyānupassanā), 수수관(受隨觀 vedanānupassanā), 심수관(心隨觀 cittānupassanā), 법수관(法隨觀 dhammānupassanā)이 네 묶음 한 쌍으로 점차적 단계별 수행이 전개됩니다.


| 신수념(身隨念 kāyānupassanā) [신수관]


대념처경에 보면 ‘길게 들이쉬면서...’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한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길게 들이쉴 때는’ 또는 ‘길게 들이쉬면’ 이라고 해야합니다. 


모든 수행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호흡관은 하는 바 없이 하는 수행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행이든 인생사든 의도를 갖지 말고 의지로서 다만 할 뿐, 주어진 만큼만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목표를 향하여 애쓰지 않아도 행하는 바가 없이 행해지는 무심의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원력만 세우십시오.


1. 긴 호흡보기 

호흡을 본다는 것은 사띠(sati, 명상입문반 참조)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길게 들이 쉬면 긴 호흡인줄 알아 차리고..'입니다. 


들숨과 날숨 속에서 먼저 짧은 호흡을 알아차리고 긴호흡을 알아차리면 다음단계에서 짧은 호흡, 긴호흡이 자연스럽게 관찰되어집니다.


2. 짧은 호흡보기

들숨과 날숨 속에서 짧은 호흡관을 말합니다. 집중력이 계발이 한단계 상습된 레벨입니다.


3. 전체 호흡보기

경전에는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고 내 쉰다’로 되어 있는데 여기도 한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호흡보기 경험’입니다. 이것은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단계는 신의 영역이기에 저절로 되는 것이고 하는 게 없어진 상태입니다.


4. 고요한 호흡보기

경전에는 ‘몸의 작용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 쉬고 내쉰다...’ 라고 합니다만, 의지로서 애쓰지 않아도 마음집중이 깊어져 호흡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수행경지입니다. 



| 수수념(受隨念 vedanānupassanā) [수수관]


5. 기쁜 호흡 경험하기

맛지마 니까야에는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공부 짓고...’ 라고 되어 있는데 희열을 경험하는 것으로 아잔브람 스님말씀에 의하면 ‘beautiful’ 호흡입니다.


6. 행복한 호흡 경험하기

4,5,6 단계는 명상6단계 법칙에서 배운 감미로운 호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5,6단계의 열락 호흡)을 ‘아는 마음’ 경험

내가 사라져 버리고 열락(悅樂, 유한한 욕구를 넘어서서 얻는 큰 기쁨)을 무심히 아는 것만 생깁니다.


경전에는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들이쉬고 내 쉰다’ 이렇게 나와 있는데 ‘심행(心行, 마음의 형성)을 경험하면서는  '들이쉬고 내쉬리라’와는 호흡관과 관계없이 그냥 황홀한 호흡과 즐거운 행복어 호흡을 아는 마음을 체험합니다


8. ‘아는 마음’ 고요히 하기

단지 아는 마음 즉 '앎' 만 있습니다. 경전에는 ‘마음작용을 편안히(고요히)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면서...’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단계에 오면 중생심의 종자가 바뀌어 가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 심수념(心隨念 cittānupassanā) [심수관]


9. 니밋따 출현 경험

‘경전에는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리라..‘라고 되어있는데 말이 안 맞습니다. 하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마음의 빛이 너무너무 뛰어나 아무것도 없이 니밋따만 있습니다. 니밋따는 감동입니다. 빛, 소리, 냄새를 통해 감동의 극치로 드러납니다.


10. 니밋따 빛내기

경전에는 ‘마음 경험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 고 되어있는데 실제적 체험은 니밋따가 마음의 대상이 되어 ‘니밋따 빛내기’가 기쁘게 만들어지는 수행의 단계입니다.


11. 니밋따 지속하기

‘경전에는 마음 경험을 즐겁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되어있는데 실제 체험하는 현상 속의 수행은 니밋따 지속하기입니다. 의지가 작동하지 않고 하는 바 없이 하는 행위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그대로 맡기는 것으로 ’너 알아서 해~‘ 이렇게 됩니다.


12. 선정(Jhana) 

마음의 자유 = 심해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열락의 기쁨과 행복이 있고 그 자리에서 체험하며 통찰이 일어나며 열반을 이룹니다.


부처님께서 체험하지 않았다면 지구상에는 그 경지를 알 수 있는 이가 역사상 아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선정의 6요소 |


선정의 요소 여섯 가지는 ‘심,사,희,락,심일경성(초몰입상태=삼매)’ 다섯 가지에 + ‘평온(upekkha 우펙카)’입니다.


선정은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이 있는데 ‘심, 사, 희(열), 락, 심일경성’이 초선(일선)의 요소이고 이선에 가면 심, 사가 없어집니다.


제삼선의 경지를 증득했을 때 세번째 선정의 요소인 희열(삐띠)는 빛이 바래져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온(捨, 우펙카 upekkha)’의 요소가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尋) = 위딱까(vitakKa)의 번역이 ‘일으킨 생각’이지만 실제적 체험에 따르면 ‘자동적 다가감’이 정확하고, 위짜라(vicara)의 번역은 "지속적  고찰'이 아닌 ‘자동적 움켜쥠’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정이라는 것은 열락과 평온에 온 마음이 몰입된 경지로서 몸과 마음이 얼어버린 것과 같이 스스로의 의지작동이 될 수 없는 상태(不動)이기 때문입니다.


선정은 의도는 물론 의지마저 멈춰진 아는 마음(앎)만 있을 때 체험되는 경지인데 '일으킨 생각'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부동(不動)이 아닌 동(動)이므로 온전한 번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정은 의지가 사라진 무아지경의 상태로 선정의 여섯 요소가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내안에서 자동이 왜 일어나냐 하면 우리 안에 삐띠(喜)와 수카(樂)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 법수념(法隨念 dhammānupassanā)[법수관]


13, 무상(無常)에 대한 반조(조견, 고찰, 숙고) : aniccanupassana, 조견무상.

존재하면 고통입니다, 유신견, 시기, 질투, 사견, 계금취견, 의심을 벗어남. 자기와 남을 통제하지 않는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四相을 통찰한다.


내 것이 아니구나 조건에 의해서만 일어나는구나. 통찰 일어나는데 들이쉬고 내쉬고는 없습니다. 무상에 대한 통찰로 확철대오, 이즉돈오가 일어납니다. 통찰은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14, 이욕(離慾)에 대한 반조 : viraganupassana, 이탐반조

내가 무상을 본 것에 대한 실천력입니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욕망 속에서 욕망을 여의고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랑하되 애착하지 않는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고 조복할 수 있습니다. 


뇌의 본능을 벗어나는 게 지혜입니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만나면 자유가 일어납니다. 사랑, 명예, 재물을 갖고도 탐착하지 않는 것이 이탐반조입니다. 


경전에는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리라..‘ 되어있는데 실제는 행주좌와에 일행삼매로 이뤄집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일행삼매입니다. 


15, 소멸(消滅)에 대한 반조 : nirodanupassana, 

존재로부터의 자유, 욕망, 성냄, 양심없음, 수취심 없음이 사라집니다.


경전에는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리라..’ 되어 있습니다. 애욕, 권력욕, 재물욕이 소멸되는 통찰을 얻고 불환과의 니르바나(열반/닙바나)을 이루게 됩니다. 탐착과 성냄, 비양심, 수치심을 완전히 소멸시킵니다.


16,사리(捨離)에 대한 반조 : 빠띠니사가누빠사나(patinissaganupassana),

무명으로부터의 자유, 자만, 해태심(게으름),  혼침(숙면일여),  들뜸(흥분), 후회의 완전한 놓아버림의 통찰, 아라한과의 니르바나(닙바나, 열반)입니다.


이상의 법수념은 14가지 낄레사(중생의 오염원 번뇌)를 완전히 벗어나 초월하는 것입니다.


간화선 명상

간화선은 화두로서 수행하여 곧바로 깨달음을 얻는 참선법입니다.


간화선의 화두는  깨달음을 이룬 스승들의 선문답인 화두가 의문(알고자 마음)이 되어 마음 속의 의식에 자리잡아 묻고 묻는 참선법입니다.


간화선은 지혜통찰의 위빠사나와 선정삼매를 얻는 사마타 명상이 동시에 수행되는 탁월한 정혜쌍수 명상 참선법으로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하는 수행법의 맥을 전승한 1,500여 년의 고준한 역사를 지닌 선불교 수행법입니다. 


선불교의 선(禪)은 본래불교인 초기불교의 사선(네 종류의 선정)과 확철대오하는 깨달음을 포괄적으로 나타낸 불교 전문 용어입니다.


간화선은 아비담마식 위빠사나(Vipassanā)와는 달리 보고 듣고 배우지 않아도 곧 바로 깨달아 본래부처의 성품(불성)자리를 체험하게 합니다.


*불성(佛性) : 불성은 부처의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누구나 부처가 될수 있는 잠재적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성의 다른 말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대하여 정통 초기불교 스승인 아잔 차 선사는 "초록색 물이든 노란색 물이든 본래는 깨끗하고 투명한 물이었다. 마음도 본래 그와 같이 깨끗하고 순수하며 혼탁하지 않다. 감각을 따라갈 때 마음은 혼탁해지고 그 속에서 길을 잃는다. 사실 마음은 ‘그 무엇’이 아니다. 마음은 그냥 보고 느끼는 것이다. 모든 정신적 감흥을 느끼고 받아 들이고 체험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본래부처》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본래) 빛난다. 

그 마음이 중생심으로 온 번뇌에 의해 오염되었을 뿐이다."

[AN.Ⅰ.9, “pabhassaram idabhikkhave citta tañ 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han" ti.]

『앙굿따라 니까야』(AN1:5:1)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간화선 화두는 바로 여기서 나의 문제를 이해하고 삶의 통찰과 지혜를 꽃피웁니다.


"내품 속에 한물건이 있는데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어도 형언할길이 없네.

스승이 무슨말이냐?고 묻는다면, 

전각 끝의 풍경이 바람에 땡그랑 땡그랑한다 말하리."


육조 혜능대사께서 대중에게 말했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청황적백(青黃赤白), 남녀 등의 모습이 아니다. 아는 사람이 있는가?”


모두 다 ‘한 물건’이 있는데 다만 모를 뿐, 한물건이 있다고 해도 맞지 않는 본래면목 그대로의 진여자성 청정심입니다. 분별심만 내지 않으면 그자리가 진여자성의 원각(두루 원만하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룸)자리입니다. 


이게 바로 간화선법의 비법으로 간화선의 화두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게 만들어 곧바로 정혜쌍수(定慧雙修) 몰입 삼매가 되어 이즉돈오(理卽頓悟, 쌍카루펙카)를 성취합니다. 그리고  확철대오(완전한 통찰의 깨달음)가 되게 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쌍경』에 "사마타-위빠사나(지관쌍수)를 함께 닦아 모든 번뇌와 고통의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성향들이 끝나게 되어 견성성불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수행법의 체계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간화선 또한 정통 초기경전에 수록된 사마타-위빠사나가 동시에 쌍으로 닦여지는 수행법입니다.



|간화선의 시조, 선불교 창시자 달마대사


네가 부처다!

우리는 본래 그대로 대자유 해탈자입니다. 간화선 화두는 一超直入如來地(일초직입여래지, 한 찰나에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들어감) 참선법입니다. 


선정과 지혜를 이루는,

사마타-위빠사나

깨달음은 사마타-위빠사나의 수행 체계를 갖출 때 성취됩니다. '선정(禪定ㆍ쟈나) 없는 지혜 없고 지혜 없는 선정 없다'는 것이 초기경전 붓다의 말씀입니다. 


간화선은 위빠사나는 물론, 선정의 필수인 삼매가 동시에 닦아지는 1,500여 년의 고준한 역사를 지닌 선불교의 수행법입니다.


*삼매(三昧)는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초집중 상태의 경지. 삼매는 무의식 속에서 괴롭고, 불행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치유해 나가는 '영혼의 치유과정'이다.




선불교 간화선은 부처님의 나라 인도 수행승 달마대사의 의해 1,500년간 전승되어 왔습니다. 


달마대사는 인도의 왕자 출신으로 위빠사나의 대가입니다. 지금의 남방 초기불교보다도 더 오랜 영속성을 지닌 위빠사나의 역사입니다. 


위빠사나도 관심법(마음관찰)로 번역되지만 선불교 간화선은 위빠사나 마음관찰과 같으면서 더 빠른 마음관찰의 관심법입니다. 지금의 남방 초기불교의 위빠사나와는 질적인 차이가 다르기도 합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간화선과 같이 문답 속에서 언하대오(법문 속에서 곧바로 마음을 깨침)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정과 지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수행인 정혜쌍수가 될 수 있도록 사마타-위빠사나라는 지관수행을 지도하였습니다. 이 역시 간화선 수행에서 바로 각득합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앙굿다라니까야라는 고대경전 <쌍경>에 사마타(평온=삼매)와 위빠사나(통찰=지혜)가 동시에 수행이 되어 모든 번뇌의 족쇄로부터 해탈열반(견성성불)하는 하는 수행이 간화선입니다.


부처님의 화두수행(법수관)은 선정삼매를 증득한 후에 형성된 것은 모두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않고 나라고 하는 실체는 없는 텅빈 공(空)이다라고 하는 오온개공을 관조하게 하는 무상·무아관 화두입니다. 


간화선은 부처님 당시의 위빠사나와 같은 효력의 마음공부 참선입니다. 



중국 조주스님이 주석한 백림선사.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저는 방금 이 곳에 왔습니다. 큰스님께서 잘 지도해 주십시오.”


“죽은 먹었느냐?” “예” “그럼 밥그릇이나 씻어라(洗鉢盂去)”

 - <무문관> 


한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스님, 인생에서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조주선사가 갑자기 일어서며 말했다. 


“오줌 좀 눠야겠다. 이런 사소한 일도 몸소 이 늙은이가 해야 하는구나” 

-〈조주록>


화두 종류

- 나라고 여기는 나는 누구인가?

- 어떤 것이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인고?

- 석가도 미륵도 그의 종이다. 왜? 이뭐꼬?


- 부처님을 '똥 닦는 막대기'라고 한다. 왜 똥 닦는 막대기라고 했지? 이뭐꼬?


- '무엇이 부처인가' 물으니 '마삼근!'이라고 한다. 왜 '마삼근'이라고 했을까? 이뭐꼬!


- 물이 가득 찬 큰 대야에 바늘 하나를 던진 도리는 무엇인가? 이뭐꼬?


-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한다. 부처님은 있다(有)라고 했는데 왜 없다(無)라고 했을까? 이뭐꼬?


- 만법귀일 일귀하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 '손말틀 말안틀!' 손가락이라고 말해도 틀리고 손가락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틀린다. 이뭐꼬? 한번 일러봐라!



| 간화선과 초기불교 위빠사나의 관조

 

관조(觀照)란 위빠사나(內觀, 내면관찰)에서 법의 대상인 무상 • 무아를 

점점 더 깊이 반복하여 고찰하고 숙고하고 관하는 

실제적 위빠사나로서 이를 아누빠사나(anupassana)라고 합니다. 


미국불교에서는 위빠사나 수행을 종교적 색채를 없애기 위해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옮겨쓰기도 하고 

한국에는 '마음챙김'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좀더 명확히 하려면 '컨템플래이션'(contemplation)의 '관조'가 

부처님 본래 수행인 관심법에 가깝다고 볼수 있습니다. 


무상에 대한 관조(고찰/반조)는 법수관(法隨觀)의 첫 번째 수행으로서

'아닛짜누빠사나'(Aniccanupassana 아닛짜+아누빠사나)라고 합니다.


반야심경의 오온개공*의 조견(照見, 빛을 비추듯이 자세히 살펴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 색色-육체, 수受 느낌, 상想-인식, 행行-의도, 식識-의식은 

다섯 가지 집합체로서 몸과 마음이 상호 연기적으로 드러날 뿐 텅 비어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한다.


나라고 여기는 것의 실체는 없습니다. 나라는 것의 존재로 느껴지는 것은 

육체, 느낌, 인식,감정 • 의도,의식 다섯 가지 집합체인 오온(五蘊)일 뿐입니다. 


이 오온이 텅 비어 없고 조건지어 연기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에고의 반응은 있어도 작동은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악업은 짓지 않게 됩니다. 

불건전한 환경에 가까이하지 않으니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니 운명이 바뀝니다. 

그 누구에게 이해와 용서와 관대함을 갖게 됩니다. 


자비와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모든 일에 성취만 있게 됩니다. 

선정을 얻고 난 다음 삼법인에 대한 통찰이 일어나지 않으면 첫 번째로 무상에 대한 반조를 합니다. 

무상은 무아입니다.


그리하여 사랑,명예,재물에 대한 다겁생의 집착을 여의게 됩니다. 

왜 사랑,명예,재물이 나쁜 것입니까? 불교는 염세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출리수행의 종교입니다. 


출리(出離)란 세속적 한시적인 행복이 아닌 균형 잡힌 완전한 행복과 영원한 대자유로 향한 가르침입니다.


거기 밖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고 욕망을 추구하는 안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일시적이지 않게 평온, 평안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천국이요 극락이라는 천상 세계보다도 더 뛰어난 세계인 인간 범부의 능력으로는 전혀 알수 없는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진리의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상을 인식한 사람에게 무아의 인식이 스스로 확립된다. 그리고 무아를 인식한 사람에겐 ‘내가 있다’는 환상은 완전히 제거되고 이생에서 열반을 얻는다” - 『앙굿따라 니까야』 <메기야 경>


-각산 스님 명상입문 멈춤의 여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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